일본차와 우리나라는 아주 인연이 깊다.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질긴 인연은 여전히 이어지는 중이다. 물론 산업화에서 앞서간 일본차가 압도적 우위였다. 생산 면에서도 소비 시장 면에서도 한국은 늘 일본 따라잡기에 급급했던 게 사실이다. 다만 2000년대 들어 한국차가 일본차의 턱밑까지 추격한 것도 특기할만 하다.

일본의 자동차산업은 1907년 시작됐다. 거기에 비해 우리나라는 조립단계조차 1955년에야 진입할 수 있었다.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의 자동차 기술에 크게 의존했다. 닛산과 마쓰다, 미쓰비시, 도요타 등이 우리나라의 기술도입선이었다. 그렇게 일본에 의존하던 한국 자동차 산업은 1976년 최초 국산고유모델인 포니를 생산하면서 서서히 제자리를 잡아갔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오히려 일본차를 위협할 정도의 수준이 됐다.

한국 자동차 시장도 당연히 일본 것이나 다름없었다. 간간히 미국이나 유럽차들이 들어왔지만 수입차 주력은 일본차였다. 일본차는 값이 합리적이고 고장이 적으며 서비스가 원활하다는 장점이 있다. 소비자들은 외제차라는 덤까지 감안해 일본차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도요타 렉서스는 한 때 상류층의 심벌이었다.

그 기세가 꺾인 것은 아베정권의 한국 때리기가 절정에 이른 2년 전이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불이 붙자 그 불똥은 일본차로 튀었다. 일본 브랜드를 단 차는 판매부진에 허덕였다. 길가에 세워진 일본차에 페인트 세례가 벌어지는가 하면 한 골프장은 일본차 입장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일부 정비소에서는 일본차 정비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일본차가 요즘 없어서 못 파는 지경이 됐다는 보도다. 혼다차 판매는 11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45%가 늘었고 도요타도 9%나 늘었다는 것이다. 특정 차종은 재고가 바닥났다고 한다. 국산차 출고대란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지만 ‘노 재팬’ 열풍이 식은 탓도 있다는 분석이다.

새삼 시장의 냉혹함에 놀라게 된다. 애국 마케팅과 같이 어떤 이벤트는 시장에서 오래 가지 못한다. 품질과 가격이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다. 일본차가 반격에 나선 이상 국내 자동차 시장은 다시 외제차와의 전쟁터가 될 것이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진로는 명확하다. 끊임없는 신기술 개발을 통해 가격과 품질, 디자인에서 일본차를 누르는 게 유일한 방안이다. 앞으로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으로서 위엄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차의 진격을 오히려 입에 쓴 약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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