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접어들어 제법 많은 비가 내리면서 떠나가는 가을의 걸음을 더욱 재촉합니다. 도로 위에 젖은 채 비바람에 뒹구는 나뭇잎들은 자연의 순환, 생명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나 이런 늦가을이 단지 떠남이나 소멸의 계절만은 아닙니다. 봄꽃이 막 피기 전 4월 만경강, 동진강 모랫벌을 떠났던 기러기들이 큰 무리를 지어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수만 무리의 기러기 곁에는 맹금인 말똥가리가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앉아 호시탐탐 기회를 사냥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또한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가 돌아와 서늘한 바람을 타고 날아올라 구름만큼이나 높이 활공하며 반가운 인사를 합니다. 청둥오리 넓적부리, 홍머리 오리들도 늦가을 강가에서 물장구를 치기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겨울 철새들의 시간이 돌아왔음을 실감합니다. 겨울을 맞이하는 들과 강가에 새로운 생동감이 가득합니다. 늘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겨울 철새들을 바라보면서 반가운 마음과 함께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순환이 이어져 왔는지 생각해 봅니다.

새의 조상은 1억 2천만 년 전 지구에 등장하였습니다. 1억 2천 만 년은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의 인식 한계를 넘어서는 엄청나게 긴 시간입니다. 이 긴 시간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46억 년에 달하는 지구 나이를 1년으로 치환하여 생각해 보면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 새의 조상은 지금부터 10 여일 전에 등장한 것이며, 아프리카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12분 전에 해당합니다.

또한 사람의 한평생은 0.5초 정도입니다. 따라서 새들이 지구에서 차지해왔던 생태적 지위와 가치는 이제 갓 등장한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들을 관찰한다고 하지만 실제는 새들이 우리 인류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새는 꽃보다 하루 먼저 태어났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꽃과 나무가 땅 위에서 번식하고 경계를 넓히는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들은 새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새들은 지구의 늦둥이인 인류에게 자연에 대한 상상력과 영감을 주었으며 지친 삶의 위로가 되었습니다. 새들은 시(詩)와 그림의 소재가 되었고, 또한 문학과 신화 그리고 음악 등 모든 예술적 영역에서 등장합니다. 떠나간 여인에 대한 감정을 새에게 빗대어 노래한 ‘황조가’는 교과서에서 맨 먼저 배우는 옛 노래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제일 먼저 가르쳐 주는 노래가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엽서 한 장 써 붙여서’ 는 어른이 되어도 자연스레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가르칩니다. 지금과는 달리 마음속 생각을 써서 전달하는 방법이 없었던 시절에는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가는 새들은 사람들에게는 부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철새가 다음 해에 그 자리로 돌아오는 특성을 이용하여 변방으로 떠난 아들, 전쟁터로 끌려간 남편을 걱정하는 가족들이 소식을 전해주길 소망하는 존재로 이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이 새들을 면밀하게 관찰하여 얻어진 것입니다.

새를 관찰하기 위해 과거처럼 눈과 귀의 감각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몇 가지 현대적인 광학장비가 있다면 훨씬 더 다양한 새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초보 탐조인들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장비는 쌍안경입니다. 수없이 많은 종류의 쌍안경이 있지만, 탐조에 적당한 것은 8x40(배율X대물렌즈 크기)로, 이보다 큰 것은 무겁고 상(像)이 많이 흔들리며, 작은 것은 밝기가 떨어져서 제대로 관찰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10-30만 원 정도 예산으로 장만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새 도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초보자에게 필요한 도감은 가벼워서 주머니에 넣고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한국의 새’ (야외원색도감-LG상록재단)가  적당합니다. 전문적인 도감은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은 후에 구입하는 것이 좋습니다. 

세번째는 필요한 것은 관찰 노트입니다. 적당한 크기의 수첩을 구해서, 관찰 일자, 장소, 새의 종류, 숫자, 주변 배경을 적거나 재주가 있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 더욱 도움이 됩니다. 쌍안경, 도감, 관찰 노트. 탐조의 3종 신기(神機)입니다.

처음 새 관찰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는 새를 보기 위해 어디를 가야 하는지 장소의 문제입니다. 새는 어디에서나 관찰되지만 내가 보고 싶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새는 쉽게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도움이 되는 것은 먼저 탐조를 시작한 선배들의 조언이겠지만 그마저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인터넷의 도움을 받는 것이 편합니다. 국내의 새들을 관찰 기록하는 ‘네이처링 한국의 새’ https://www.naturing.net/m/841가 우리나라 새들의 위치정보를 비교적 쉽게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는 곳입니다. 또한 새들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어 살지 않고 여러 나라를 거쳐 이동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국제적인 사이트에서도 그 정보를 찾아볼 필요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Ebird.org& https://ebird.org/home 가 아주 유용합니다.

특히 이 사이트는 새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습니다. 전 세계 수만 명의 관찰자가 자신의 관찰기록을 서로 공유하기 때문에 집단 지성이 만든 이런  관찰기록은 장기적으로는 멸종위기 새들을 보호하고 나아가 지구 환경을 지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언어적 장벽이 있더라도 꼭 가입하여 활동하기를 권합니다. 

휴대폰에 몇 가지 앱을 설치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빠르게 새를 동정하고 기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언급한 사이트들은 모두 휴대폰 앱이 있습니다. 새의 소리를 녹음하고 인식해주는 앱인 BirdNET 있으며 사진으로 새를 구별해주는 Merlin이라는 앱도 있습니다. 외국에서 만든 앱이라 장애 요소가 조금 있긴 하지만 실제 사용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가 탐조 장비를 사용하는 이유는 새를 가까이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와 거리를 두고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터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새들의 삶을 억지로 엿보는 것보다는 멀리서 보이는 대로 새들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자연스럽게 관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공존하는 소중한 생명체로서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아름다움을 즐긴다면 오래도록 우리 곁으로 새들은 오고 가기를 영원히 계속할 것입니다. /김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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