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판티투힌의 보금자리. 긴 장마에 처마 밑에 매달아 둔 마늘이 걱정되는지 하나하나 만져보고 있다.
▲ 바라만 봐도 좋은 사람. 마루에 앉아 남편의 손을 꼭 쥐고 미소를 짓고 있다.
▲ 고수농공단지 식품용기 제조공장에서 완성품의 최종검수가 그녀의 임무! 4년차 베테랑 답게 익숙한 손놀림으로 완성품을 검수하고 있다.
     
 

하나 둘 셋!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하나!
베트남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판티투힌(45)의 소원 하나!
그녀의 나이 스무 살 무렵인 1990년대 초반,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98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누구누구가 한국에 시집 가 행복하게 잘 살더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지요. 당연히 그녀 또래 사이에서는 한국남자와 결혼해 행복하게 사는 게 소망이었지요. 막연한 동경이자 소원은 지난 2004년,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에 이루어집니다.

둘!
고창 새댁으로 16년, 보석 같이 예쁜 딸 둘!
방과후 학교 수업을 마치고 저녁 9시를 넘겨 집에 오는 중학교 3학년이 된 큰딸은 일찍부터 철이 들어 엄마를 무척이나 많이 도와줍니다. 어떤 때엔 엄마와 딸의 역할이 뒤바뀌었다고 착각할 정도이니까요. 큰 딸은 엄마가 기대고 쉴 수 있는 나무입니다. 그 나이에 투정을 부릴 법도 한데, 되레 엄마를 다독입니다. 쉬는 날이면 집안일 돕고 학교생활도 야무지게 해냅니다.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생입니다. 동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집에서 스쿨버스를 타기 위해 10분 이상 큰 도로까지 혼자 걸어 나가야 하는데, 늘 씩씩하게 대문을 활짝 젖히고 뛰어나갑니다. 오, 나의 사랑, 나의 희망!

셋!
남편, 시어머니, 친정아빠.
지친 그녀를 잠 못 들게 하는, 병마와 싸우는 가족이 셋!
구순의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신 지 십년이 되었지요.
남의 농사일을 돕거나 경작하기 힘든 자투리땅을 일궈 두 딸을 키웠던 아이 아빠는 당뇨가 심해지더니 급격한 시력저하로 외출조차 힘든 상황입니다.
늘 근심이 한 짐인데 얼마 전에 걱정이 하나 더 늘
었습니다.
고향의 아버님이 암 판정을 받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지요.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과 달리 슬픔만 깊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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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판티투힌 씨는 고창군 고수농공단지의 식품용기 제조업체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언 4년, 그나마 자신이 돈을 벌 수 있어 천만다행이라고 긍정합니다.
의지할 사람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언덕은 고향친구입니다.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말이 있듯, 가까이 있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삶의 동지들이지요.
단순히 말이 통하는 동일국적을 넘어 한동네 살게 된 사연이 그녀들을 단단하게 묶었습니다.
그녀를 보듬고 위로해주는 베트남 댁 친구 삼총사가 있기에 큰 위안입니다.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나이, 남들처럼 호강은 못해도 집에서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알뜰살뜰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고 버텨야 해요. 저까지 아프면 어떻게 하겠어요? 끔찍해요!”
온가족이 모이는 주말 저녁이 제일 행복하다는 그녀.
지칠 대로 지쳐 보이지만 금지옥엽 두 딸을 위해 마음을 다집니다.
그녀에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이어지길 응원합니다.
기나긴 장마에 더욱더 지칠 판티투힌의 삶에 쨍하고 해 뜰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글·사진=장태엽기자·mode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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