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기학

  “‘빨간 피터 이야기’는 판소리입니다. 판소리가 전승되기 이전에 생산되었고 그 생산을 이어 가야 새로 생산된 판소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극을 잘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을 50대가 되면서 내렸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판소리 만들기를 시작하고 나온 첫 작품입니다.”
  국립민속국악원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지기학이 ‘지기학 창극연희 대본집’이라는 이름으로 <춘향실록> <동리> <빨간 피터 이야기>(연극과인간) 세권을 펴냈다.
  그가 민속국악원 근무 당시 무대에 올렸던 창극 작품 등의 대본을 정리해 대본집으로 엮었다.
  <춘향실록>에는 창극 ‘춘향실록-춘향은 죽었다!’, ‘VICTOR 춘향-판에 박은 소리’, ‘화용도 타령’이, <동리>에는 ‘동리-오동은 봉황을 기다리고’, ‘토끼타령’, ‘미친 광대들의 눈에 비친 심청-싸 아악!’ 등 대본이 실려 있다.
  <빨간 피터 이야기>에도 ‘빨간 피터 이야기’외에 작은 창극 ‘심청아’, 춤극 ‘춘자 또는 하루꼬’와 ‘춤추는 달그림자’가 실렸다. 
  이 가운데 ‘빨간 피터 이야기’는 지기학이 추구하는 새판소리의 본격적인 작업을 알리는 작품이다.
  그는 서사에서 희곡으로 판소리 판본에서 창극대본으로 전환, 판소리(가)에 서사를 바탕으로 한 성악곡이 창극대본(가)에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드러내는 서정시로 각색되고 판소리(가)로 작창된 성악곡이 창극(가)로 편창되는 작업과정으로 새로운 창극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간 새롭게 만들어진 창극이 판소리 다섯마당을 바탕으로 한 창극과 다르게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한 것이다. 
  “지금까지 새롭게 창작된 그 많은 창극의 소리들이 눈대목이 되어 하나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소리꾼 한 사람과 고수 한 사람이면 족한 판소리 형태로 그 작품들의 원형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 작품이 생명력을 이어 가는데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판소리 자신이 토양이 되어 창극으로 자라나 아름다운 꽃들과 공생공존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빨간 피터 이야기’ 원작은 프란츠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1917)다. 그는 ‘빨간 피터 이야기’를 3년에 걸쳐 판소리로 짰고 결국 1인 창극이 가능한 음악적 베이스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지기학은 2018년 4월 서울 돈화문국악당 무대에 소리북을 맡은 김대일(국립민속국악원 단원)과 함께 올랐다. 
  서연호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 공연을 ‘현대 창작 판소리의 가능성을 예측하게 하는 가늠자와 같은 작품’이라 평했다.
  “지금까지 남들이 하지 못했던 지성적인 주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하며, 오늘날의 청중과 소통의 영역을 확대했다는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신선미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의례적인 추임새가 아니라 가슴으로 공감하게 하는 공연이었다.”(서연호 ‘지기학 창극의 현실적 의미와 가치’ 부분)
  지기학은 “주변에 좋은 인연으로 작품집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토대를 마련하니 목표는 더욱 선명해졌다. 판소리 만들기,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창극만들기, 물론 소리판에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고 감동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무형문화제 제5호 판소리 적벽가 이수자다. 극단 미추, 서울창무극단 등에서의 연극경험을 바탕으로 창극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하는 창극연출가다. 국립민속국악원에서 20여 년간 단원으로 재직하며 악장,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제1회 창작국악극대상 연출상을 수상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