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태국에 사는 가족을 위해서다. 축축한 땅에서만 자랄 수 있는 미나리처럼 위라싹(37세)씨는 올해 들어 가장 차가웠던 영하5도의 날씨에도 찬 물에 몸을 던져야지만 돈을 번다.

겨울의 새벽 추위. 흡사 송곳으로 후려 파듯 뼛속까지 시리게 한다. 이불속에 있을 아침 6시에 차디찬 미나리꽝에 몸을 담가야만 위라싹(37) 씨의 꿈은 이루어진다.

한국에 온지 어언 5년 6개월째. 태국인 위라싹 씨는 아직도 추위가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라 말한다.

전주시 전미동의 한 미나리농장, 그는 오늘도 이른 새벽에 수도승처럼 초록빛 미나리 수레를 밀며 고향을 생각한다. 아아, 꿈속에서도 잊을 수 없는 나의 부모님. 한 살 터울의 두 딸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된 작업이 반복되며 어느새 미나리는 징검다리처럼 수면을 덮어간다.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머물 수 있는 기간은 4년9개월이다. 그는 한국에 머물며 제법 까다로운 ‘성실근로자’ 요건을 충족, 한국 체류 연장 기회를 얻었다. 작년 4월에 첫 기간을 채워 비자 연장을 위해 태국으로 돌아가 3개월 머물다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몸은 천근만근이라도 목돈을 만지는 데 한국생활이 최고임을 깨달은 그는 이번 재입국 시 아예 조카까지 데리고 왔다.

“삐야랏(조카), 함께 있어요. 둘이 있어 좋아요...”

전주 전미동에 들어와 있는 태국인은 대략 40명 정도 된다. 위라싹 씨처럼 주로 미나리농장에서 일을 하는 데, 쉬는 날에는 함께 모여 고향음식도 만들어 먹고 인근 슈퍼에서 장을 보며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랜단다. 격무를 마친 후엔 휴식처에서 서로 등을 주물러 주는 고향 이야기꽃을 피우는 게 큰 낙이다.

70, 80년대 중동근무에 나섰던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이들 외국인 근로자는 월급의 상당액을 가족에게 송금한다. 태국인 근로자 7명의 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위라싹 씨도 240만원의 월급여 중에서 170만~180만원을 고향에 보내주고 있다.

요즘 위라싹 씨는 짬이 날 때마다 한국 문화를 배우곤 한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모아 하트를 만들고 “싸랑해요~”라고 말하는 그와 두 친구들의 미소에서 외국인의 설움은 찾을 수 없다. 그의 꿈은 돈을 모아 고향에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집을 짓는 것이다. 4년 정도 더 일하면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어둠이 짙게 깔린 밤하늘을 가로질러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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