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화처럼 고요한, 없음과 비움의 미학이 살아가는, 행간으로 존재하는 시인의 운명을 노래하는 시편들이 시집으로 엮었다.
  김형미 시인의 시집 <사랑할 게 딱 하나만 있어라>가 ‘푸른사상 시선 87’로 출간됐다.
  실린 시 모두가 여러 매체 등에 발표됐던 작품으로 탄탄하다.
  특히 시집 출간을 앞두고 대형 출판사에서도 출판 제의가 왔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딱 하나씩만 용서하고, 딱 하나만 사랑하는 세상이, 시인에게는 어쩌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찬바람 불면서 물이 고여들기 시작한다/몇 새들이 저 날아온 하늘을 들여다보기 위해/물 깊어지는 나뭇가지에 날개를 접고 내려앉는다/생숨을 걸어서라도 얻어야 할 것이/세상에는 있는 것인가, 곰곰 되작이면서//그래 사랑할 만한 것이 딱 하나만 있어라<시월>

  흰 새가 날아오는 쪽에서 가을이 오고 있다/살던 곳의 바람을 죄다 안고서//딱 한 가지씩만 용서하며 살고 싶다<가을>

  박성우 시인은 추천의 글을 통해 “아리게 아름다운 시집이다. 온 힘을 다해 쓸쓸함에 맞서고 통증을 삼켜내는 시편들, ‘치명적인 그리움’(「만파식적의 전설」)과 ‘선명하게 아픈’(「태풍이 지나가던 짧은 오후」) 삶을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문신 시인도 작품해설 ‘빈속에다 쓴 한 모금의 시’를 통해 김형미는 예언 같은 시를 쓰고, 고개를 돌려 지나온 자취를 더듬는다고 말한다.
  “그의 시에서 멀리 내다보는 낯선 기척을 발견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는 뒤에 남겨두고 온 어떤 것을 들추어내지도 않는다. 바라보거나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들여다보는 것. 그러나 들여다보는 것은 단순히 드러나는 것을 보아내는 것과는 다른 행위다.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을 드러날 수 있도록 열어놓는 일이 보아내는 행위에 선행되어야 한다. 들여다보는 일은 시선(視線)의 문제가 아니라 심선(心線)이 닿아야 한다는 말이다(심선에 닿는 일을 마음씀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시인이 들여다보는 내부에는 외부와 격절되는 벽이 있기 마련인데, 벽의 임무는 외부의 시선을 가차 없이 튕겨내는 일. 그렇기 때문에 벽에 (창)문을 만들고 그 문을 열어젖히는 사전 작업이 필요해진다. 심선, 즉 마음씀은 그러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부안 출생. 원광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0년 ‘진주신문’ 가을문예 시 당선,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산 밖의 산으로 가는 길> <오동꽃 피기 전>, 그림에세이 <누에nu-e>가 있다. 불꽃문학상, 서울문학상, 목정청년예술상 수상, 2018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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