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우륵이다. 가야국의 궁중 악사 출신인 우륵은 가실왕의 명에 따라 12곡의 가야금 음악을 만들었다. 가실왕은 이 곡들을 듣고 훌륭하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우륵은 가야국이 어지러워지자 가야금을 갖고 신라 진흥왕에게 갔다. 진흥왕 역시 그를 반가이 맞고 지금의 충주 지역인 국원성에 살게 했다. 그리고 계고와 법지, 만덕 등 세 사람을 그에게 보내 음악을 배우게 했다. 이렇게 해서 가야금은 신라 등 여러 곳으로 퍼져나갔다. 남한강변의 탄금대는 바로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며 만년을 보낸 곳이다.
  가야금은 현악기로 흔히 가야고라고 한다. 울림통은 오동나무이며 12개의 현은 명주실로 만든다. 현을 지탱하는 나무괘는 기러기발과 같다고 해서 안족이라 부른다.
  오늘날 가야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풍류 가야금 혹은 법금은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오래 된 가야금이다. 그러니까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악기 그대로다. 주로 정악을 연주하는 데 쓴다. 다음은 산조 가야금이다. 19세기 김창조에 의해 산조가 창시되면서 보급됐는데 산조는 물론 민요, 병창, 시나위 연주에 활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량 가야금인데 기본인 12줄을 고쳐 17. 18, 21, 25현 등으로 돼 있다. 또 줄을 명주실로 꼬아 만들지 않고 쇠줄이나 다른 재료들을 이용한다.
  가야금은 흔히 국악기의 별이라고들 한다. 국악기 중에서는 인기가 가장 많다. 우선 소리가 맑고 고운데다 비교적 배우기 쉽고 연주법도 다양해 연주자들은 물론 듣는 이들도 즐거워한다. 거기에 산조라는 음악 형식을 만나자 가야금은 한 단계 더 진화한다. 가야금 특성들이 산조 덕분에 더 빛나게 된 것이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이 지난달 타계했다. 선생은 빼어난 가야금 연주자임은 물론 창작 가야금 음악 창시자다. ‘황병기만의 음악’으로 일가를 이룬 그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명성을 날렸다. 중학교 3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가야금을 접한 그는 서울대 국악과 강사와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 등을 지내며 활발한 활동을 폈다. 선생의 대표작으로는 ‘침향무’, ‘비단길’, ‘미궁’ 등이 있다. 문화계는 그의 서거에 대해 ‘동시대 국악인들의 나침반’이라며 국악계가 엄청난 자산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선생의 연주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 신문은 “신비로운 영감으로 가득한 동양의 수채화 같다. 극도의 섬세한 주법으로 울리는 소리들은 음악에서 청정함이 무엇인지 보여 준다”고 평했다. 황병기 선생은 우리 국악을 따분한 것에서 그 어느 나라 음악보다도 우수한 것으로 바꿔놓았다. 그의 뒤를 잇는 더 많은 가야금 명인들이 나와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