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년 나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 땅 곳곳에서는 마치 들불처럼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전라도와 충청도, 경기도 등 백제 영토 거의 대부분에서 부흥군은 기세를 올렸다. 그 가운데서도 흑치상지와 복신이 이끄는 부흥군은 임존성을 거점으로, 복침이 중심이 된 부흥군은 주류성에 근거를 두고 활동을 했다. 나중에 부흥군은 하나로 뭉쳐 주류성을 왕도로 삼아 나당 연합군과 맞섰다.
  부흥군은 나당 연합군과 치른 전투들에서 승승장구했다. 한 때는 사비성을 포위하고 기세를 올리기도 했다. 더욱이 일본에 머물던 왕자 부여풍을 맞아들인 부흥군은 정통성까지 확보하고 나당 연합군을 위협했다.
  하지만 내분이 문제였다. 주도권을 다투던 복신은 도침을 죽이고 다시 부여풍이 복신을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내분의 소용돌이 때문에 부흥군은 힘을 잃었다. 거기에 부흥군의 원군으로 도착한 왜의 수군마저 당나라 수군에 궤멸됨으로써 부흥운동은 벼랑 끝에 몰렸다. 드디어 663년9월7일 주류성이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됐다. 부여풍은 고구려로 달아났고 많은 수의 백제유민들은 왜 나라로 망명했다. 이로써 4년여에 걸친 백제 부흥운동은 막을 내리고 말았다.
  부흥군의 거점 주류성의 위치는 아직도 논란 중이다. 충남 서천의 건지산성설과 충남 연기군 당산성설, 전북 정읍의 두승산성설 그리고 전북 부안 우금산성설 등이 제시돼 있다. 다만 여러 정황과 ‘일본서기’ 등의 기록으로 볼 때 부안의 우금산성이 주류성일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어왔다.
  부안 우금산성에서 최근 동문지 유적이 확인됐다. 전북문화재연구원의 발표에 의하면 이곳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변산 정상과 이어지는 경사면에서 동문지와 성에 오르는 계단식 등성시설이 나왔다는 것이다. 동문지는 길이 7.1m, 너비 3.3m이며 나무 기둥을 꽂았던 구멍도 6개가 확인됐다. 연구원 측은 동문의 조성시기를 통일신라시대 이전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우금산성이 주류성이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되는 셈이다.
  백제 부흥운동은 중국과 일본, 신라, 백제 등이 얽힌 국제 전쟁이었다. 이후 동아시아 질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나라가 패권을 강화한 전쟁이었고 일본은 국가체제의 정비를 그리고 백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계기였다. 따라서 그 근거지인 주류성의 위치는 학계는 물론 국제적인 관심사였다. 이번 발굴은 오랜 논란을 끝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다. 정밀한 조사를 통해 결론이 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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