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부처가 다녀가셨다 해서 찾은 금당사에는 봄 생명들의 합창이 은은하였다. 진안 마령에서 마이산에 드는 길은 정갈하고 싱그러웠다. 잔잔히 흐르는 개울물은 여유로웠고 하늘을 덮은 벚나무 길은 한적하여 불가에 드는 엄숙한 고요가 한참을 따라와 줬다. 그러나 마치 좌선에 든 부처의 심중처럼 엄정하던 산골의 한적함이 금당사 입구에 몰려든 중생들의 소란으로 들떠있었다. 금당사가 마이산에 드는 남쪽 초입에 자리한 터였다.
 금당(金塘)은 또한 金堂으로 불리기도 하나 어떻든 이는 부처의 거처를 뜻하는 것이어서 분명 이곳에 부처가 계시리라 믿었다. 이는 또한 하늘의 땅이라는 뜻이겠으나 사실 하늘에 집이 있을 리 없으니 아마도 그 깊은 속뜻은 내 마음 속의 거처라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더라도 금당사는 내 속마음처럼 아득해 보였을 마이산 가슴 속에 있었다. 마이산은 퍽이나 특별한 곳이었다. 산의 자태가 웅장하고 그 기세가 유별나다. 뭉클뭉클 꿈틀거리는 바위산세의 기운으로 보아 틀림없이 부처의 큰 뜻이 머물렀을 것이다. 부처가 처음 이 자리에 거처를 마련하였을 1300여 년 전 그 무렵은 틀림없이 그런 곳이었을 터이다. 고요하고 아득하며 포근하기가 5월의 오늘처럼 따스한 봄날이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이제 번잡하게 풍겨오는 고기 타는 냄새와 지긋한 중년 여인네들의 화장기로 금당사 대문 밖은 실로 어수선했지만 그래도 금당사는 옛 모습처럼 한적하고 적적했다. 더욱이 대웅전 법당에서 들리는 스님의 독경 소리가 번잡하고 어지러운 절 밖의 속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 말씀으로 5월의 아카시아와 찔레가 곱게 피었나 보다.

순백의 아카시아 꽃이 마치 법당에 메달아 놓은 초롱 등처럼 가볍고 고왔다. 산천 천지 곳곳에 핀 부처의 마음처럼 맑은 것이 분명 부처님 오시는 발길을 밝히려 때맞춰 피어난 것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그처럼 윤기 흐르는 매끄럽고 고운 빛깔일 수 있을까? 세상은 초록인데 산중에 피어있는 아카시아는 세상을 가꾸려는 듯 짙은 향을 뿌리고 있다. 또한 골짜기 개울가에 피어있는 찔레가 아카시아 향으로 단장을 마치고 하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런 5월에 부처님 또한 하얀 연꽃을 타고 오신다고 한다. 금당사 뜰 안 연못에 핀 수련은 엊그제 부처님과 함께 내려온 것이 분명하다. 물밑으로 보이는 아득한 하늘과 작은 솜털 구름이 극락세계의 모습처럼 투명하고 고요하다. 금당사 아침의 가벼운 바람은 이처럼 맑고 잔잔하였는데 엊그제 오신 부처는 국가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화에 머물러 계신다.
 금당사에 내려오신 부처가 커다란 괘불탱화 안에 계신다하여 아카시아 향으로 가슴을 다듬고 마이산에 들었다. 괘불탱화는 불당에서 큰 행사가 있을 때에 마당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게 되는 부처 그림을 말한다. 이 부처는 마포위에 화려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그림 한 가운데에 엄숙하게 서있는 관음보살을 그린 것으로 높이가 8.7미터, 폭은 4.7미터나 되는 참으로 거대한 불화이다. 보살은 어찌나 화려하고 아름다운지 눈이 부실정도이다. 커다란 보관 즉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일곱 면의 보살얼굴과 4마리의 봉황 그리고 연꽃으로 장식되어있다. 얼굴은 둥글고 후덕한 모습이나 가늘고 가벼운 수염이 예리하다. 가는 눈매와 작은 입술이 여리하고 고상한 여성적 풍모를 갖추었다. 두 손으로는 아직 피지 않은 두 개의 연꽃봉오리를 들고 있어 더욱 고상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통견으로 된 의복은 생명을 상징하는 녹색 빛에 주홍을 주조로 하였고, 아름다운 모란꽃과 영락이 가득하며 길게 늘어뜨린 옷자락이 참으로 호사스럽기 그지없다. 신광 즉 몸 주변은 역시 섬세하고 화려한 꽃무늬로 장식하고 그 안에 범자(梵字)를 넣었다. 그 광배 바깥으로 마치 불꽃이 타 오르듯 강렬한 오색 빛 속에 좌우 각 10구씩 총 20구의 화불이 그려져 있다. 꽃구름 속에 핀 연꽃에 서있는 이 아름다운 관음보살은 화가 명원(明遠) 등에 의해 1692년부터 이곳에 머물렀다. 이처럼 화려한 관음보살이 20명의 다른 보살들을 거느리고 마이산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특별한 연유가 있었을 터였다.

금당사를 감싸고 있는 앞산 중턱에는 황금빛을 한 사찰 하나가 서있다. 짙은 녹색물결 속에 보이는 금빛은 눈이 부시도록 찬란하다. 커다란 바위 위에 서있는 이 작은 사찰이 고금당이다. 옛 금당이라 불리는 이곳은 지난 650년에 무상과 금취 스님이 부처를 모시기 위해 절을 세웠다한다.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뚜렷한 길도 없는 이 자리에 굳이 부처의 자리를 마련한 특별한 연유가 있었다. 커다란 암석으로 이루어진 이곳 동남쪽에는 나옹암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천상굴이 있다. 고려시대 유명하였던 나옹스님이 이 굴에서 깨달음을 얻었다하여 그렇게 불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중에는 승군의 사령부로서 나라를 구하다 사찰이 불에 타기도 하였다. 그리고 일제 압제 시에는 호남최초의 항일의병 결사체가 스스로 결성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부처의 특별한 점지가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곳이 금동사 혹은 혈암사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금당이 그 이름에 따라 하늘의 특별한 의지를 갖추었음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호남을 지키라는 뜻이었을 터이고 호남은 즉 우리 민족의 심장이었으니 부처의 속뜻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괘불탱화에 계시는 관음이 아마도 멀리 히말라야 산자락 티베트고원에서 내려오신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보관의 일곱 얼굴의 형상이나 그의 의관을 통해 읽어 볼 수 있는 부처의 모습이다. 그러나 엄숙하면서도 둥글고 인자한 표정과 투명하고 뽀얀 얼굴빛에선 영락없이 조선 어머니의 풍모가 담겨있다.
 이 땅 5월은 이제 또 농사철이 시작되었다. 마령 골짜기에도 벌써 논물이 가득하고 농부의 손길이 바빠졌다. 생명의 물이 필요한 시기이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물이 부족할 때마다 관음보살을 불당 앞에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그것은 오래된 전설처럼 이루어지고 있다. 그가 연꽃을 들고 이곳 금당에 머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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