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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와 채계산 출렁다리

기사승인 20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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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 순창 채계산 출렁다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회쟁이마을, 서림마을, 마계마을을 통합해 괴정리라고 개칭했고, 1935년 남원군에서 순창군 적성면으로 편입되었다. 1977년 취락구조개선사업으로 새 마을이 만들어지자 신월마을이라 하고 괴정리에 편입시켜 4개 행정마을이 되었다.
마을 서쪽에 수백 년 된 회화나무가 있어 회쟁이로 부르다가 지금은 ‘회화나무 괴(槐)’ 자를 써서 괴정리(槐亭里)라고 부른다. 괴정·서림·마제·신월 마을이 있는데, 서림 마을은 물소가 풀을 바라보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고, 마계 마을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渴馬飮水] 형상이라 ‘마계’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신월 마을은 새로 형성된 마을 지형이 마치 반달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앞산 중턱에는 어은공(漁隱公) 양사형(楊士衡)이 세운 천태암(天台庵)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공부하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유생들이 모여 들었고 과거 시험을 보기 전에 괴정리 회화나무 주변을 100회 이상 돌면 급제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신묘한 힘이 있다고 믿을 만큼 괴정리의 자연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괴정리는 채계산을 제외하고 평야 지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섬진강과 오수천을 끼고 있다. 


채계산과 출렁다리

채계산은 순창 적성면과 남원 대강면 일원에 자리하고 있는 해발 342m의 산이다. 채계산처럼 많은 전설과 수식어가 붙은 산도 드물다. 채계산은 회문산, 강천산과 더불어 순창의 3대 명산 중 하나로 일명 화산(華山)이나 적성산과 책여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바위가 책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책여산, 적성강변 임동의 매미 터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마치 비녀를 꽂은 여인이 누워서 달을 보며 창을 섦 모습인 월하미인(月下美人)의 형상을 하였다고 하여 채계산이라 불리고, 적성강을 품고 있어 적성산으로도 불린다. 

채계산 산행은 광주 대구 고속 도로 변 유촌교에서 시작해 무수재~금돼지굴봉~당재~송대봉~칼날 능선~괴정교까지 2시간 30분쯤 걸린다. 채계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송대봉을 지나 바위가 칼날처럼 이어지는 칼날 능선이다. 경험이 많은 산꾼들도 오금이 저리는 코스다.
채계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황굴이 있는데, 이곳에 암자가 1970년 초까지 건물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채계산 8부 능선에 위치한 금돼지 굴은 현감 부인을 납치한 금돼지를 잡기 위해 명주실로 위치를 파악하였다는 전설의 바위다.
아름다운 산세와 조망으로도 매력적인 채계산은 2020년 출렁다리가 개장하면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24번 국도 사이에 적성 채계산과 동계 채계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며 길이는 270m, 가장 높은 곳이 90m에 달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긴 무주탑 산악 현수교이다. 산과 산을 이은 덕분에 출렁다리를 거닐면 양옆으로 펼쳐진 섬진강과 적성뜰이 만든 자연의 광활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채계산 주차장 한쪽에는 ‘전동스쿠터 대여 부스’가 있다. 스쿠터는 금·토·일 3일 동안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전면허증을 맡기면 누구든 무료로 탈 수 있다.
또한 출렁다리 밑에 마련된 푸드트럭과 농산물 판매장에서는 음료와 간식을 즐기고 맛 좋고 인정 넘치는 지역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일광사와 목조관음보살좌상 

 채계산 중턱 경치가 아름다운 숲속 한적한 곳에 자리한 일광사(日光寺)는 1948년 10월 보살 오월명화(吳月明華)와 승려 김세현(金世鉉)이 작은 인법당을 창건하고 부처를 모시고 수도를 한 곳이었다. 그 후 김세현의 상좌(上佐)인 길용(吉龍)이 1965년부터 은사의 유지를 받들어 절을 운영해 오면서 삼성각과 관음전을 짓고 요사채를 건립하였다.
일광사 뒤쪽 채계산 중턱에 오래전부터 암굴이 하나 있는데 옛날부터 수도승들과 학자들이 암굴에서 깊은 수련을 하거나 공부를 하였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승려들이 수련을 하는 곳이다.
일광사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다. 불상의 제작년대는 18세기로 추정되며, 함풍(咸豊) 4년인 1854년 경남 함양 영은사(永隱寺) 약사전에 봉안하기 위하여 개금한 관세음보살상임이 복장유물로 발견된 ‘개금 중수기’를 통해 명확히 알 수 있다. 개금 작업시 금어(金魚)는 하은응상(霞隱應相), 비구덕유(比丘德裕), 비구포일(比丘抱一)을 비롯한 16명이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하은응상(霞隱應相)은 19세기 중엽부터 활발하게 경상도 지역에서 불상을 개금하고 불화를 조성했던 화승(畵僧)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이 발간한 『한국의 사찰문화재』(1982년)에도 수록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이 일광사에 봉안된 연유는 창건자인 김세현 스님이 입적하여 정확히 알 길이 없으나, 사전(寺傳)에 의하면 사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불심이 깊은 어느 보살(月明華 吳)이 가보로 내려온 이 불상을 일광사에 시주하여 1965년 이후 길룡(吉龍)스님에 의해 일광사 관음전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복장유물로는 1974년 두 번째 개금 중수시 봉안한 것으로 보이는 다라니 2점, 한약재 1점, 인조구슬 4점, 오색실 2점, 금붙이 2점 등 11점이 있다. 나무로 조각된 앉은 높이가 47㎝, 무릎 폭이 28.5㎝인 관음보살 좌상은 2014년 10월 31일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다.


화산옹의 신비

채계산 아래에 흐르는 적성강 강변에 거대한 흰 바위가 서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백발노인이 우뚝 서 있는 모습 같다 하여 사람들은 이 바위를 '화산옹'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화산옹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화산옹의 색깔이 희고 맑게 보이는 해에는 풍년이 들었고, 검은색을 띄면 흉년이 들었다. 또한 큰 불이 난다거나 전염병이 도는 해에는 파란색으로 변하였고, 전쟁이 나거나 천재지변이 있을 때는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화산옹 앞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아이를 갖지 못한 아낙들은 그 앞에서 치성을 드렸다. 또한 화산옹 앞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공손하게 경의를 표하고 지났고,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반드시 말에서 내려 공손히 절을 하고 지나갔다. 이것은 화산옹이 영험한 바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한 병사(兵使)가 화산옹관련항목 보기 앞을 지나게 되었다. 그를 수행하는 아장(亞將)은 화산옹의 영험함에 대해 병사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출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병사는 천하의 명장이 한낱 바위에 예를 갖추기 위해 말에서 내리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냐며 그대로 말을 타고 유유히 지나갔다. 그런데 몇 발짝 가지도 못해서 잘 가던 말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러자 병사는 더욱 화가 나서 병졸들에게 화산옹을 부숴버릴 것을 명하였다. 그런데 병졸들이 화산옹의 목을 치자 화산옹의 목에서 피가 흘렀고, 그 목은 데굴데굴 굴러서 적성강 물속으로 굴러 들어갔다. 그 후로 화산옹의 영험은 사라지고 때아닌 천재지변과 괴변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끝내는 적성현이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수미륵과 암미륵
 미륵불에는 암수 구분이 없으나 마을 미륵에서는 암미륵과 수미륵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괴정마을 수미륵과 신월마을 암미륵은 남원과 순창을 연결한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는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이와 같이 암미륵과 수미륵의 구도를 갖춘 것은 순창읍에 위치한 두 기의 석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수미륵은 남자를 상징하는 미륵이다. 판석형 입석 미륵불로, 불상의 형식을 갖추지 않은 입석상이다. 수미륵의 높이는 128㎝, 폭은 45㎝이다. 괴정 수미륵은 마을 미륵의 전형을 보여 준다. 마을 미륵은 주민들이 불안한 사회에서 황급하게 달려가 마음을 달래 주고 의지할 수 있는 불상을 말한다. 암수 미륵의 형식을 갖추기 위하여 채계산에서 선돌을 구해 불상 형태만 표시한 채 산기슭에 세워 놓은 것이지만, 불안한 현실에서 미륵불의 영험을 받기 위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부처당 거리의 괴정 수미륵을 통해서 느껴볼 수 있다.
신월 암미륵은 원래 ‘독집’이라는 미륵 당집 안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거리로 위치를 바꾸었다. 암미륵의 높이는 116㎝, 폭은 48㎝이다. 석불의 얼굴상은 높이가 48㎝이며, 지상에 노출된 몸체는 70㎝다. 마모가 심하나 전형적인 하체 매몰 불 형태를 보여 준다.
마을 미륵은 마을 사람들의 순수한 꿈과 희망이었다. 하체 매몰 불은 미륵불이 미래불이라는 것을, 미래에 출현할 미륵불이라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현실이 고달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미래에 풍요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홍식 hslee1820@hanmail, 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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