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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란,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요람이 되어야 하는 곳

기사승인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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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지용의 사람이야기-전주 우림중학교 배주열 교장>

   
 

나는 머리를 빡빡 깎고 검정색 교복을 입고 중고등학교에 다녔다. 사회 전체에 권위주의와 군사문화가 드리워져 있던 시대였다. 국가가 사람의 존엄성을 업신여기던 시절이었으니 ‘학생의 인권’이라는 것은 아예 개념조차 없었다.

선생님은 ‘하늘’이었다. 스승의 날 노래의 가사처럼 좋은 의미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영화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풍경처럼 선생님이 때리면 학생은 맞아야 했다.

물론 훌륭한 선생님들도 많이 계셨지만, 개인적 성품과 무관하게 선생님과 학생은 ‘다른 계급’이었다. 그런 계급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에 교장선생님이 있었다. 어린 우리들에게 교장선생님은 전두환만큼 높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 요즘 학교는 낯설다. 냉난방이 되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신식 건물뿐만 아니라 학교의 모든 것이 기분 좋게 생소하다. 학생과 교사가 대등한 인격체이며 학교의 주인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비로소 당연해졌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 학생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천해온 선생님들도 많았다. 전주 우림중학교 배주열 교장도 그런 선생님들 중 하나다.   

나이 차가 적지 않은데도 나에게도 이제껏 말 한마디 함부로 한 적이 없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공경하는 것이 몸에 배인 어진 사람이다.

나는 가끔 “형님이 우리 선생님이었으면 저도 훌륭한 사람 됐을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는데, 농담이 아니다.

배 교장은 산골 소년이었다. 무주군 무주읍이 고향이다. 다섯 남매 중 큰아들이다. 아주 가난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동생들을 데리고 인삼밭의 풀을 매고 소를 돌봤다.

그 와중에도 공부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소를 끌고 들에 나가서 풀을 뜯기면서 나무 그늘에서 혼자 공부한 실력으로 면장님 아들과 전교 1,2등을 다퉜다. 그런데 시골 학교이다 보니 모든 것이 열악했던 모양이다. 중학교 3학년 한 해 동안 교장선생님이 세 번이나 바뀌었단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고등학교에 들어가던 시절이었는데, 3학년 동기생 모두 전기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했다. 전주의 명문 고등학교를 지망했던 그도 낙방해서 대전에 있는 후기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가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데에도 이런 경험이 한몫했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농대 축산과에 진학하고 싶었다. 농가소득을 올리기 위한 부업으로 토끼사육을 권장하던 때였다.

중학교 2학년 때 토끼 두 마리를 사다 길렀는데 1년 만에 50여 마리로 불어났다. 그 토끼를 팔아서 어린 나이로는 제법 큰돈을 손에 쥐었다. 정성을 들여 가축을 돌보는 일이 즐겁기도 했다. 그래서 축산인의 꿈을 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시에 낙방하고 객지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생각이 바뀌었다. 학생의 자질과 노력을 제대로 이끌어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군복무를 마치고 교사가 되었다. 첫 발령지인 고창의 한 고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아내를 만났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의 어진 여성인데 서로 비슷한 성품이라 금방 친해져서 얼마 후 결혼했다.

그 후 여러 학교와 전문직 장학사 등을 거쳐 몇 년 전에 무주의 한 중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가 어렸을 때 다녔던 학교보다 훨씬 작은 학교여서 전교생이 달랑 열세 명이었다. 그 자신이 시골 출신이라서 시골이 공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시골 학교지만 아이들이 다양한 배움의 기회에서 결코 소외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다양한 체험학습 과정을 만들었고 학생들과 함께 서울에 가서 오페라 공연을 관람하기도 했다.

학교가 아이들에게 미래를 향해 열린 넓은 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 한 명의 학생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도록 맞춤형 보충학습과 야간공부방을 만들었다.

학교 안에 텃밭도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채소를 길렀다. 직접 기른 상추와 깻잎을 뜯어 한 달에 한 번식 학생들과 삼겹살파티를 했던 것이 40여 년의 교직생활 중에 가장 소중한 추억이라고 한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우림중학교에서는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민주적인 소통과 협력,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선생님들은 동료 교사들에게 자신의 수업을 공개하며 개선방안을 함께 토론하는 ‘수업나눔’을 하고 있다.

정기적인 프로젝트 협의회, 교사 학습동아리 등도 활성화되었다. 학생들은 스스로 자기주도적 현장 체험학습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재작년에 학생들이 지역의 마을장터에 참여해서 벌어온 수익금전액을 ‘정의기억연대’에 성금으로 내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들 모두 몹시 대견하고 고마웠다고 한다. 배 교장은 학교가 공부를 잘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요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배 교장은 1958년생이다. 이른바 ‘58년 개띠’는 출생연도가 특정한 인구집단을 일컫는 대명사가 된 유일한 사례다. 그 한 해에 백만 명이 넘게 태어났다고 하니,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 중에서도 가장 많다.

게다가 이들은 가난과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겪으며 신산(辛酸)한 삶을 살아온 세대이기도 하다. 58년 개띠 배 교장은 올해 만 62세가 되어 내년이면 정년퇴직을 하게 된다. 1981년에 사범대학을 졸업했으니 군 복무 경력을 포함하면 만 40년 근속이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할 동안 한 길을 걸어온 소회를 물어보았다. “누구나 하는 얘기라서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말 그대로 ‘천직(天職)’이었던 것 같아. 선생으로 살다보면, 아이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배우는 것도 많지. 내가 최선을 다하면 아이들의 삶에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직업이라는 긍지도 있었고. 선생이라는 직업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자식들 기르고 공부시킬 수 있었던 것도 참 고맙지.”

전라일보 webmaster@jeolla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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