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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백제·신라 ‘각축장’ 대규모 ‘봉수망’ 을 구축하다

기사승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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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③ 진안 황산리고분군·와정유적 용담댐 수몰지구에 자리

   
 

전북의 가야문화유산은 남원·장수·진안·임실 등 전북 동부지역인 진안고원과 운봉고원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그동안 백제문화권에 속했던 곳으로 인식되어온 전북지역에서 가야문화의 존재는 1980년대 이후 남원 월산리, 장수 삼고리 고분군 등의 유적이 발굴조사되면서 확인되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폭넓은 지표조사가 이루어지면서 많은 봉수와 제철유적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가야와의 관련성이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조사를 통해 남원·장수지역을 중심으로 전북 동부지역 일대에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한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안지역은 여러 문헌 등을 통해 삼국시대 백제의 영역에 속했던 곳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90년 중반 이후 용담댐 수몰지구에 대한 조사를 통해 황산리 고분군, 와정유적 등이 발굴조사 되면서 가야문화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진안지역은 호남 동부지역 최대의 교통중심지이자 가야권역으로 이어지는 연결통로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와 관련된 유적으로 황산리 고분군과 와정유적이 용담댐 수몰지구에 자리하고 있다.

이들 유적은 금강 본류에 인접한 산의 정상부에 약 350m 거리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황산리 고분군에서는 가·나지구에서 총 17기의 가야계 돌덧널무덤(石槨墓)이 조사되었으며, 다양한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출토된 토기류는 세발달린토기, 목짧은항아리, 굽다리접시 등의 백제계 토기와 구멍뚫린굽다리접시, 긴목항아리, 낮은원통모양그릇받침 등의 가야계 토기가 대부분으로, 수량은 거의 반절씩 확인되었다.

이 외에도 굽다리긴목항아리, 손잡이달린잔 등 신라계 토기도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무덤과 유물의 양상으로 보아 황산리 고분군은 5세기 말엽에 만들어진 무덤군으로, 이 지역이 백제와 가야, 신라가 접경을 둔 각축장이었음을 엿볼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전북지역의 가야계 돌덧널무덤은 가야와 관련된 유적인 남원 월산리·두락리, 임실 금성리, 장수 삼고리 등에서 조사되면서 전북 동부지역에 밀집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와정유적은 외곽부분에 목책토성이 돌려지고, 내부에 온돌시설을 갖춘 7기의 주거지와 저장공이 조사되었으며, 조성시기는 5세기 경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 대부분은 백제계 토기로 확인되어 유적의 축조세력은 백제로 추정되지만 소량의 가야계 토기가 함께 출토되고 있어 백제와 가야가 당시에 이 지역을 경유하는 교통로로 이용하여 교류관계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와 함께 진안지역의 대표적 가야문화유산으로 봉수가 주목된다.

최근 지표조사 결과 진안을 비롯한 진안고원 일대에 봉수 등이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양상으로 확인되면서 가야문화와의 관련성이 추정되고 있다.

봉수란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서 변방의 급박한 소식을 중앙에 알리던 통신제도로, 국가의 존재와 함께 국가의 영역을 가장 진솔하게 대변해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일본서기에는 가야 왕국 반파국이 513년부터 515년까지 백제와 3년 전쟁을 치르면서 봉후(수)를 운영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를 통해 가야 소국 반파국이 봉수를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봉수가 진안군 등 전북 동부지역에서 100여 개소의 삼국시대 봉수가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진안군에서 그 존재를 드러낸 봉수는 봉우재봉 봉수, 망바위 봉수, 봉우재 봉수, 태평봉수, 서비산봉수 등 20여개소에 달한다. 진안을 비롯하여 무주, 완주 일원의 봉수망의 최종 종착지는 장수지역에 위치한 가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진안=양대진기자·djyang7110@

양대진 기자 djyang7110@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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