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호남중학교에서 있었던 동학혁명(東學革命)에 대한 강의는 나의 동문(청학동書堂) 김봉곤 교수의 인연으로 시작되었다. 금년 학기 초 수요공부방에서 함께 동학에 관련된 공부를 하자는 제의에 바로 스터디를 하게 되었다. 스터디 모임에서  매주 2시간 이상 책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 속에서 동학교도와 농민의 활동상황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또한 시민강좌의 초청 강사이신 이남희 선생과 김용우 선생, 이명권 교수의 강연을 들으면서 점점 관심에서 배우는 자세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동학혁명 유적지 답사를 하면서 당시 농민들의 처절했던 절규를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김제 원평 집강소는 현재 초가집 한 채만 남아있는데 이곳 원평 집강소 초가집은 동록개 라는 백정이 신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김덕명 장군에게 기증한 것이란다. 현재의 건물은 2014년 김제시에서 매입하여 2015년 12월에 4칸 초가집으로 복원된 건물이지만, 복원 시에 발견된 건물의 상량문에서 ‘광서팔년임오삼월이십(光緖捌年壬午三月二十, 1882년 3월 20일)’이라고 적혀 있는 글이 발견되어 복원한 건물에 그대로 사용하여 누구든지 유관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복원 이후 나무로 깎아 세운 “사람이 하늘이다”라는 장승과 “원평 집강소”라는 두 장승이 오고가는 사람들에게 당시 민중들의 항거를 대신 표현하면서 꿋꿋이 서서 버티고 있는 듯 모습이 전해졌다.
또, 이평면의 말목장터는 전봉준 장군이 당시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민중들을 집결시키며 전열을 편성하던 ‘장두청(將頭廳)’이 설치됐던 곳으로 농민들이 죽창을 깎아 만들던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 농민들이 숭고한 목숨을 죽창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이르러서는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현재는 전봉준 장군이 민중에게 외치는 연설도가 세워져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하였다.
고창 무장의 동학혁명 기포지에는 동학농민 1차 봉기지로 농민군의 훈련장과 횃불형상의 기념탑이 있는 곳이다. 기념탑은 ‘제폭구민(濟暴救民) 보국안민(輔國安民)’의 대의를 널리 호소하여 봉기에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있는 모습이 역동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전봉준 장군 생가 터에는 초가집 두 채가 있는데 본채와 아래채로 되어 있으며 이곳에서는 13세까지 사셨다는 기록이 안내판에 있었다. 이 외에도 임실과 남원지역의 동학농민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유럽 열강과 왜국(일본)의 국제관계 속에 조선말기 민중들의 차별로 인한 피폐한 삶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르며 동학교도와 농민들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피를 토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울분을 넘어 죽음으로 항거했을까? 잠시나마 동학 민중들의 함성을 느껴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또한 당시 국내 정치상황을 알게 되면서 동학혁명이 작금(昨今)의 민주주의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동학에 대해 비로소 조금 알아갈 때쯤 김봉곤 교수로부터 저에게 중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동학에 대한 강의를 해보라는 제안에 무심코 수락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고등학교에서 인성예절 교육을 4∼5년 전부터 해오고 있던 터라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앞서 있었다. 하지만 준비하는 과정에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동학을 어떻게 하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할까?’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고민하게 되었다. 특히 전라북도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동학에 관련된 내용이라면 기본적인 학습이 있을 수 있어 강의할 내용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할 것이란 생각에 더욱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듣는 학생들로 하여금 동학의 의미와 정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고 강의하는 사람도 보람을 느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강의 주제는 김봉곤 교수가 제안했던 “정읍은 동학농민 혁명의 중심지였다.” 라고 정하고, 내용은 동학혁명 관련 한자어를 중심으로 핵심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는 것으로 하였다. 먼저 동학혁명의 중심인물인 전봉준과 김개남, 손화중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 후 동학혁명과 관련된 한자어를 아래와 같이 차례로 사전적 의미를 설명하며 동학혁명 정신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였다.

*동학(東: 동녘동 學: 배울학) 
동학은 서학(西學:천주교)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조선말기1860(철종11)년에 최제우(崔濟愚)가 제세구민(濟世救民)의 뜻을 가지고 창건한 민족종교를 말함.
*민란(民: 백성민 亂: 어지러울란, 반역란)
정치적 또는 사회적 문제로 민중들이 집단적으로 일으킨 폭동이나 소요를 말함.
*봉기(蜂: 벌봉 起: 일어날기)
많은 사람들이 벌떼처럼 떼지어 세차게 들고일어남을 말함.
*창의(倡: 부를창 義: 의로울의)
국난을 당하여 의병을 일으키는 것을 말함.
*집강소(執: 집행할집, 잡을집 綱: 기강강, 법강 所: 장소소)
동학농민운동 때 동학농민군이 전라도 각 고을의 관아에 설치한 일종의 자치 기구를 이르던 말. 한명의 집강과 몇 명의 의사원이 행정사무를 맡아보던 곳.
*사발통문(沙: 사기그릇사, 모래사 鉢: 대접발, 그릇발, 사발발 通: 통할통, 소통할통文: 글월문 문채문)
격문(檄文)이나 호소문 따위를 쓸 때 누가 주모자인가를 알지 못하도록 서명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둥글게 빙돌려 가며 적은 글을 통문이라 함.
*기포(起:일어날기 包: 모일포)
조선말기, 동학농민 운동 때 농민 등이 동학의 포의조직을 중심으로 하여 봉기하던 일을 말함.
*장두청(將: 장군장 頭: 우두머리두, 머리두 廳: 큰집청, 대청청, 관아청, 대청청)
장군이나 우두머리가 머물러 집무를 보던 곳을 말함.
*만석보(萬: 일만만, 모두만 石: 돌석 洑: 보보, 나루복)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에 있던 저수지를 말함. 쌀 일만 가마니(대략 80만kg) 정도가 나오는 들에 물을 공급 할 수 있는 양의 저수지.
*유진(留: 머무를류 陣: 무리진, 군대진)
군사들이 머물러 있는 것을 말함.

이와 같이 동학혁명과 관련된 단어들을 통해 동학의 의미와 정신을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고, 나아가 ‘동학농민혁명기념일’ 제정의 의의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였다.
‘보국안민(輔國安民), 광세창생(廣世蒼生)’의 이념구현인 자유(自由), 평등(平等), 인간존중(人間尊重)의 계승이라는 동학은 농민운동을 넘어 혁명이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학농민운동에 나오는 어려운 한자어들을 통해 동학의 의미와 역사적 맥락을 간단히 짚어 보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학농민혁명이 추구했던 당시 농민들의 숭고한 정신을 배우고 계승발전 시켜 그 뜻을 길이 전하고, 더불어 우리고장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우리 고장에서 봉기했던 그 참뜻을 몸소 체득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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