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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노동조합 결성 붐··· 일제 자유노조 탄압 지속

기사승인 2019.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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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일제강점기 전북 노동운동 - 군산지역을 중심으로>군산지역 노동단체 20여개 야학 통해 노동자 의식화 작업 정미소 날품팔이 선미공 파업 부두노동자들의 항쟁 특징적

   
 

김민영(군산대)

  일제강점기 전북지역은 상대적으로 공업발전이 지체되어 쌀과 면화를 주 원료로 하는 식료품과 방직공업 등이 주력을 이루고 있었다. 그만큼 금속, 기계기구 등의 중공업은 매우 더딘 기형적 구조를 가졌었다. 당시 전반적으로 일본에 종속된 기형적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특히 농업을 주종으로 했던 전북지방에서는 그 파행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후 1920년대에 들어 상대적인 공업의 진전과 함께 노동운동의 대중적 진출 역시 눈에 띄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노동운동의 성장은 일정하게 운동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담아내고 지도할 조직과 운동노선의 발전을 모색하며 전개되었다.

  1920년대 노동자 조직형태의 발전방향은 크게 전국조직의 건설과 지방조직의 건설이라는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의 성장에 따른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선진 활동가들과 함께 운동가들이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고양시키고 노동운동에 조직성과 목적의식성을 부여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국적인 흐름 속에서 전북지역에서도 1920년대 전반기에 노동공제회, 노동친목회, 노동회, 노동단, 노동대회, 노동조합 등 다양한 명칭을 가진 조합들이 점차 조직되기 시작한다.

  노동조합의 설립과 함께 지역내 연맹체를 설립하려는 운동도 나타난다.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군이나 시 등의 행정지역을 단위로 하는 지역연맹체의 결성이었다. 지역내에서 연맹체가 결성되기 위해서 몇개의 단위 조합들을 필요로 했으므로 일정 정도의 산업기반이 있어야 했고, 이와 함께 지역 노동운동의 역량이 일정한 정도로 축적되어야 했다. 

  이들 노동조합의 활동내용은 대부분의 단체들이 노동임금의 제정과 노동시간의 결정, 혹은 조합원의 경조사에 대한 상호부조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노동자의 노동상황이나 생활상태조사, 근검절약 및 저축의 장려 등 조합원의 후생과 복리 등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었다. 이와 함께 당시 대부분의 노동자, 농민이 문맹상태에 놓여 있었던 사실을 배경으로 조합원의 교양과 계몽을 통한 의식의 각성을 위하여 야학회나 강연회 등의 다양한 활동이 이어졌다.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각종 노동단체에서는 노동야학을 개최하여 문맹퇴치와 계몽운동에 앞장섰으며, 이와 함께 연극(素人劇)을 통하여 의식을 주입시키는 활동을 하였다. 야학활동을 보면 노동청년회의 활동과 같이 야학을 통한 활동이 있으며 그 졸업생의 배출과 아동모집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었다. 또한 학예회 등을 통한 활동도 있었다. 이는 당시 노동운동의 방식 중의 하나로서 야학이 일상화 되어 있었음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자유노조 역시 이러한 방식으로 대중속에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기념행사와 강연회를 통한 활동도 들 수 있다. 각종 노동조합에서는 매년 노동절을 맞이하여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진행하였다. 이 행사에서는 주로 집회와 함께 ‘노동문제’ 등에 대한 강연활동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일제는 1930년부터는 이러한 활동을 금지하면서 역시 기념행사도 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소년 소녀들을 대상으로 시국과 관련된 웅변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이것 역시 일제의 탄압으로 행사가 금지된다. 이러한 활동 뿐만 아니라 정기총회나 임시총회 자체를 금지함으로써, 그 탄압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밖에 노동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있었으며, 1931년 즈음에 이르면 노동조합은 전국노동총연맹 산하에 있는 노동연맹에 가입을 추진하게 되는데, 일제는 이를 금지하면서 자유노조에 대한 탄압을 계속해 나간다. 

  일제하 전북지역 노동운동에 대한 상세한 연구는 빈약한 실정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활발했던 군산지역 노동자들의 생활상태를 당시의 관련 신문기사자료 등을 통해 살펴 본 연구가 특징적이다(김민영, 일제강점기 군산 옥구지역의 민족사회운동사연구).

  주지하듯이 지역의 근대사 역시 일제와의 끈질긴 항쟁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일제하 군산지역의 노동운동은 정미소에서 날품팔이로 살아가는 선미공들의 태업과 파업, 부두노동자들의 항쟁이 특징적이다.

  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1910년대에 들어 군산지역은 일제 식민통치의 일정한 기지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쌀을 저장하는 창고가 부두일대는 물론 시가지까지 즐비하게 서고, 그 거대한 창고군과 더불어 대규모 정미공장이 여기저기 섰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군산오찌아이정미소, 군산정미소, 아사히정미소, 조선정미소, 가토정미소, 모리기쿠정미소, 하나오카정미소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일본인 소유였고, 조선인 소유가 있기는 하였으나 그 규모는 매우 영세했다.
 
  1920년대 이미 군산지역에는 20여개의 노동단체가 만들어져 있었다. 이들 노동단체들은 노동자들에게 야학 등을 통해 의식화 작업을 하고, 동시에 조직화를 해나가며 1920, 30년대 지역의 노동운동을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이 운동은 대개 서로 연계하여 전개된 경우도 있었지만 주체에 따라 산발적, 분산적으로 진행된 비합법적 운동이라는 자체 한계와 더불어 일제의 탄압으로 발각되어 좌절되고 만다.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간 이 운동은 1930년 말에서 1935년까지 5년 동안 밖으로 드러난 적색노조사건만 보더라도 70건에 달하였다. 이후 노동운동 역시 일제히 수면 아래로 잠복하게 된다. 

  올해는 3.1운동 100년이라는 역사적 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역 독립운동의 여러 측면을 함께 조사 연구하고 정립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 노동운동의 구체적 전개 과정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는 물론이고, 이 운동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지역의 민족사회운동에 대한 정립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고 생각된다.      

전라일보 webmaster@jeolla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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