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나타남이다.(옥구읍)
  고랑과 이랑으로 이어지는 기름진 옥구(沃溝) 들은 진초록으로 일렁인다. 쏟아지는 햇빛이 더 스며들면 황금빛으로 반짝일 넓은 들판은 이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희노애락의 원천이다. 농부의 바램, 성실, 햇빛과 바람과 비가 어우러져 익어갈 들판 위 옥구들을 구성하고 있는 마을의 이름은 상평리, 이곡리, 옥정리, 선제리, 오곡리, 어은리, 수산리이다.
 
 사람의 이름처럼 지명도 마을의 특징과 소망을 담고있다. 관아가 있었던 상평(上平)리는 윗뜰이다. 이곡(耳谷)리는 귀의 모습을 닮은 지형이다. 옥정(玉井)리는 맑은 우물이 있는 마을이다. 선제(船堤)리는 배 모양을 닮은 동네이다. 오곡(五谷)리는 다섯 개의 계곡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다. 어은(漁隱)리는 은어상수(隱漁相隨)에서 따왔고, 수산(壽山)리는 수왕(壽旺) 명산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모두 명당이라는 설이 있다.
지역을 표현하는 낱말도 명쾌해야 구전되기 쉽고 그 생명이 길게 이어진다. 아쉬운 것은 상평 보다는 윗뜰이, 오곡 보다는 오리실이 더 정감이 있는데 동네의 이름의 대부분이 일제강점기에 경색하게 바뀌어져 조상들이 지은 오감이 담긴 정감어린 이름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상평리에는 광월산이 있다. 동네를 아늑하게 감싸고 있는 광월산 능선을 따라 석성이었지만 지금은 토성이 된 읍성이 있다. 산위에 오르면 그 읍성 길을 마치 순회하는 병사가 된 듯 걸을 수 있다. 성 밖에 멀리 보이는 드넓은 논들은 그 옛날 바닷물이 들어왔었고 외적선이 출몰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옥구읍성에는 아직도 동문과 서문자리가 그대로 남아있다. 서문은 암문(暗門)이다. 서문 밖에서 보면 입구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좁은 통로가 휘어져 나있고 그 길을 조금만 걷다보면 신기할 정도로 환한 윗뜰이 펼쳐진다. 동문에는 당산나무가 오랜 세월속 이야기들을 가득 담고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남문이 있던 자리는 옥구선이 칼처럼 놓여 미군부대로 이어지는 무기를 실은 기차가 달렸지만 지금은 마치 고물처럼 흙속에 묻혀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나타남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왕권강화를 위한 인재양성소였던 향교, 옥구향교도 태종 3년에 세워진다. 하마비와 홍살문,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이 그리고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있다. 건물 사이 사이에 나이든 배롱나무와 은행나무가 향교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향교 뜰을 밟는 교생들에게 보이지 않는 교훈을 주고자 심어놓은 배롱나무는 껍질을 벗는 아픔에 뒤틀린 몸이 오히려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덜 익은 은행 알이 땅에 수북히 떨어져도 나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은행 알이 있어 걱정 없다. 인생은 그 열매로 인해 평가된다는 것을 은행나무를 보면서 깨닫게 하려 했단다. 
                            
옥구향교는 전국 어디에도 없는 많은 생각들을 품고 있다. 대성전 오른쪽 옆으로 단군성전이 있다. 그 옆으로는 최치원을 기리는 문창서원이 있고, 최치원이 어릴적 책을 읽었다는 자천대가 있다. 또 담 너머로는 최치원과 옥구지역 선현을 모시는  옥산서원이 있다.
대성전 왼쪽으로는 세종대왕 숭모비가 있다. 그 옆으로는 최치원, 이건명, 조태채,최익현, 임병찬을 모시는 현충단이 있다.
통일신라 말 대 학자인 최치원이 옥구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옥구인들은 최치원이 옥구출신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도 남아있다. 서유구의 〈교인계원 필경〉의 서문에는 “공의 이름은 치원이요, 자는 해부요 고운은 호이니 호남 옥구 사람이다” 라고 쓰여있다. 전국 어디에나 있는 최치원 관련 설처럼 취급해 버리기에는 구전되어 온 실질적인 최치원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신시도, 대각산, 월영산, 내초도, 자천대 등등이다.
그는 문인이자. 정치가요 사상가로서 유,불,선 통합을 이루었으며 통합된 정신의 핵심을 풍류라 했다. 최치원은 국유현묘지도(國有玄妙之道) 즉 “우리나라에 깊고 오묘한 도가 있는데 그것은 풍류이다”라고 했다. 풍류의 실천원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이고 접화군생이란 관계하는 모든 것들과 제대로 만나 서로 상생하는 것을 말한다 통합과 융합의 현시대에도 매우 어울리는 정신이다.
향교하면 유교를 가르치는 곳이다. 그러나 옥구향교에는 민족의 근원이 되는 단군성전이 있고, 유불선의 통합을 이끈 최치원을 기리는 서원이 있고 임금 중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이룬 세종대왕 숭모비가 있다.
토성 위에서 보면 그 전경이 넓고 조화롭다. 다른 것들이 어색하게 함께하는 것 같지만 묘하게 어울림을 보면서 필자는 옥구인들의 민족정신을 바탕으로 한 열린마음, 관대함, 통합정신의 나타남이라 생각이 들었다. 
지정학적 위치는 그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역사가 된다. 역사는 글로도 기록되지만 유물과 유적이라는 기록으로 후손들에게 남겨진다. 그 유물과 유적 속에는 선조들의 보이지 않는 생각이 담겨있다. 그 생각이야 말로 미래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기름진 옥토이다. <참고자료:군산의 지명유래(군산문화원)>
/문정현 사단법인 아리울역사문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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