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욱 국민연금공단
 
 
할머니가 화장을 한다. 빨간 루즈를 입술에 바르고 복숭아색 분으로 볼을 터치한다. 그리고 검은색 눈썹을 짙게 그린다. 할머니 얼굴이 또렷해지고 표정이 환하다. 할머니는 삼베적삼을 입고 꽃버선을 신으셨다. 화장을 마치자 고운 입을 벌려 밥을 떠 먹여드렸다.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 쉬시라는 장의사를 말이 끝나자 임종을 보지 못한 막내아들이 얼굴을 어루만진다. ‘사랑합니다. 어머니’라는 울부짖자 여기저기서 다른 가족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결혼을 하고 신행 차 처갓집에 가던 날이었다. 할머니는 아는 해녀에게 특별히 부탁했다며 말전복과 해삼, 소라 등 귀한 음식을 내주셨다. 고령에도 어찌나 정정하신지 기운도 좋으시고 말씀도 쩌렁쩌렁 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으면 핸드폰에 할머니 전화번호가 수시로 울린다. 별일이 없는지 확인하는 안부 인사였다. 이번에는 아내가 살이 많이 빠졌다면서 밥을 잘 챙겨 먹이라고 당부를 하셨다. 할머니는 집안일에도 관심이 많았다. 제삿날은 한시도 가만히 계시질 못하신다. 걱정이 많으셔서 여기저기 간섭을 하신다. 국이 짜다 반찬이 싱겁다며 간을 다시 보라고 하시기도 하고 집안이 어지럽다며 청소를 하라는 잔소리도 하셨다. 할머니의 극성이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가족들은 묵묵히 따랐다.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인자하셨다. 식사 때가 되기도 전에 이 서방 밥 줘라, 술 줘라 하시며 나를 많이 챙겨 주셨다. 할머니는 평소 항상 기운이 넘치시고 정이 많으신 분이었다. 그렇게 건강하셨던 할머니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에 마비가 있어 병원침대에 의지하며 생활을 했다. 요양병원과 응급실을 오가며 치료하면서 회복되기를 기도했지만 점차 기력을 잃으셨다. 호탕했던 목소리는 어느새 모기소리처럼 가늘어지셨고 후덕한 얼굴도 야위어간다. 그래도 내게 힘들게 '사위'라고 불러 주셨던 할머니는 정작 가족들에게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운명하셨다. 처음으로 입관하는 절차를 지켜보았다. 이승에서 인연을 정리하는 것은 고인의 몸을 닦는 것으로 시작한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장의사는 정성스레 할머니의 몸을 닦고 손톱, 발톱도 깎았다. 그리고 저승으로 가기위해 삼베옷으로 갈아입었다. 삼베옷은 고인이 미리 준비해두셨다. 삼베옷을 입고 난 뒤 장의사는 12겹의 매듭을 만들었다. 그 매듭을 상주들이 하나씩 풀었다. 우리는 매듭지어진 이승의 인연을 하나씩 풀면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고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으로 ‘이 서방 밥 주라 술 주라’라는 말이 그리울 거고 정말 고마웠다고 말씀드렸다.
 나도 한때 번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어 도망치듯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머나먼 이국의 낯선 길을 터덜터덜 걸으며 내 삶에 대한 생각을 했었다. 현실의 삶은 도피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네 삶이 항상 봄이 아니듯 누구나 시련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살다보면 행복한 하루도 있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처럼 불행도 끼어든다. 그래도 소소한 행운에 웃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의지하며 사는 게 삶이라 생각하며 나 자신을 다독였다
 할머니는 98년간의 일생동안 얼마나 많은 부침과 고난을 겪으셨을까. 배우자를 먼저 보내고 제주 4.3사건 때에는 안타까운 일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때마다 어떤 심정으로 삶을 다독거렸을까. 할머니의 영전 앞에 그런 생각이 든다.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배웅한다. 맏손자는 할머니가 죽만 드셨던 것이 안타까웠는지 하늘에서는 죽을 드시지 말고 맛있는 음식 많이 드시라는 인사를 한다. 장의사가 이제 관의 뚜껑을 닫을 시간이다. '혼이여' 큰소리로 서너 번 외친 후 쾅쾅 관을 닫는다. 이제 영영 이별이다. 
 할머니를 땅에 묻던 날,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하늘이 슬펐던지 아니면 이 세상에 미련이 남으셨는지 굵은 빗줄기가 내렸다. 얼굴에 흐르는 눈물 섞인 빗물을 거둬내며 이젠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소망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유독 할머니가 예뻐했던 손녀인 와이프는 아직도 많이 힘들어 하는 눈치다. 문득 그립고 슬픔이 밀려올 때면 내가 다독이고 잘 챙겨야할 것이다. 사는 것은 어쩌면 죽음으로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인자하고 억척스런 삶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를 이끌어주는 등대가 하나 더 생겼다. 할머니다. 지치고 힘들 때 할머니 등대 불빛을 보며 살아가는 방향을 찾게 될 것이다. (원고지 11.1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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