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 인 추석 모두가 고향을 찾아 가족을 만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산가족도 이들 중 하나다.

깊어지는 가을만큼 그리움도 깊은 이산가족을 20일 만났다.

“죽기 전에 고향땅 한번만 밟아봤으면….”

6.25 전쟁에서 가족과 헤어진 김경숙(88·김제시) 할머니는 말을 꺼냈다.

한국전쟁 당시 김 할머니는 7자매 중 막내로 어머니와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자랐다.

20살이던 김 할머니는 전쟁을 피해 시댁식구와 함께 남으로 내려왔다. 피난길 어머니와 언니들의 생사도 확인할 수 없었다.

전쟁으로 친정식구들과 이별한 김 할머니는 긴 세월이 흘러 귀는 어두워지고 그리움은 커져갔다.

김 할머니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북에 있는 가족을 찾을 수 없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다가 이내 곧 쓴웃음을 내비쳤다.

“시간이 너무 없어…. 엄마 얼굴 한번만 다시 봤으면 바랄 게 없는데.”

이내 김 할머니의 눈가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붉게 물들었다.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은원군 장정면에서 지내던 강치윤(84‧김제시) 할아버지는 피난 중 몇몇 형제와 남으로 내려왔다.

“너무 시간이 많이 지났어. 같이 내려온 형들도 가고 나만 남았어….”

전쟁 당시 16살이던 강 할아버지는 “막내 동생 강신자(79) 할머니만 살아 있을 것 같다”며 “하루하루 지날 때 마다 아픈 곳이 늘고 있어. 10년만 일찍 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반면, 세월이 흘러 보행보조기가 아니면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북에 있는 강 할머니 생사를 확인 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이다.

동생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에 강 할아버지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했지만,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68년간 갈 수 없는 고향과 만날 수 없는 동생 생각에 회한에 잠기면서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혹여나 고향으로 갈수 있을거란 설렘을 내비쳤다.

강 할아버지는 “자주 만나야지 그래야지 그 동안의 앙금이 풀어지지”라며 “하루 빨리 분단의 아픔을 해결하고 고향에 가서 동생 얼굴 한번 보고싶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한편,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이산가족 인구는 13만 2731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 7만6024명이 이미 생을 마감했으며, 5만6707명이 현재 만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중 80세 이상 인구는 3만5541명에 달하며 전체 62.7%를 차지한다.

전북지역에는 983명의 이산가족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김용기자‧km4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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