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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야의 중심지 전북··· 국가적 관심과 지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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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승인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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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백제 후백제 재발견> 익산토성 발굴조사서 '수부' 인장기와 출토 익산 백제 수도 입증 장수가야 철기문화의 '꽃'

   
 

특별취재팀 기획연재가 진행되던 지난 8월말 깜짝 놀라운 사실이 전해졌다.

  익산시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금마면 익산토성(사적 제92호) 발굴조사에서 익산이 백제 수도였음을 증명하는 기와 등을 발굴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발표는 ‘익산이 백제 무왕 때 수도였음을 확인해주는 '수부'(首府)라고 새긴 인장기와가 서문지(서문 터) 주변에서 출토됐고 백제시대 수막새(마무리 기와)도 함께 나왔다’는 내용이다.
  수부 기와는 수도 지역임을 지칭하는 유물로, 왕궁으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 유적과 피난성인 부소산성에서 같은 기와가 출토된 바 있다.
  당시 익산시는 "익산토성에서 출토된 수부 기와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 출토된 13점의 자료와 함께 익산이 백제 수도임을 증명하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익산토성은 백제시대 때 축조된 성으로 지난 1980년과 1984년 발굴조사 때 남문지(남문터), 남쪽성벽, 일대 판축 토루, 일부 성벽의 축조양식 등이 확인됐다.
  당시에도 토성 일대에서 연화문, 파문 수막새, 인장기와 등의 유물이 출토돼 인근 백제 왕궁리 유적과 연관이 있는 유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동안 왕궁리 유적은 계속된 발굴조사를 통해 ‘(왕궁리 유적은)문헌과 고고물증을 통해 검증해 본 결과 왕도가 분명하며 사비도성의 서도(西都)와 왕궁평성의 동도(東都)라는 2개의 도성 체제’(이도학 교수)로 밝혀졌다.
  이러한 왕궁이 그동안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전북지역 백제 등 유적에 대한 발굴 조사가 부족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백제부흥군이 662년 겨울 잠시 수도로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김제 피성(성산공원)도 극히 일부분만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이 결과 발굴조사를 맡은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은 ‘나말여초에 주로 이용되었던 토성으로 국가의 중요한 시설로 이용됐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면서도 영정주공의 간격이 좁아 추가 발굴조사에 따라 그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또한 전북지역 가야사에 대한 집중적인 조사도 필요하다.
  가야사에 대한 관심은 지난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과제로 꼭 다뤄줄 것을 당부하면서 급격히 커졌다.
  특별취재팀은 문 대통령 언급 이전에 장수가야(6회), 남원 고분군(7회)를 집중 취재하면서 전북지역 가야 유적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바 있다.
  ‘장수가야’ 편에서는 장수군 명덕리 대적골 제철유적지 현장 취재를 통해 이 곳이 철광석에서 철을 분리시켜 거푸집을 활용해 솥 등을 만들어내는 공정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국내 유일의 유적임을 확인했다. 군산대학교 박물관이 2015년 이후 실시한 학술지표조사 결과에서도 장수군 일원에서 약 70여 곳의 제철유적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을 정도로 장수는 가야 철기문화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었다. 
  ‘남원 고분군’ 편에서 다룬 아영면 두락리 32호 고분은 이 지역은 마한과 백제의 영역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을 무너뜨린 유적이다. 당시 발굴조사 결과 이 지역은 가야문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던 세력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이 당시 상위 지배계층으로 추정되는 고분에서만 발견됐던 것으로 보아 가야계의 국가, 즉 ‘기문국’이 운봉고원에 존재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았다.
  이를 바탕으로 남원시와 장수군은 고분과 산성, 봉수, 제철유적을 기반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백제사 관련 유적 조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만큼 전북지역 가야사에 대한 더 깊은 연구도 현재로서는 녹록치 않다.
  전북도는 지난 7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전북의 대표적 가야 유적이 있는 남원(제철)과 장수(봉수) 등의 유적 발굴을 위한 용역비를 확보했다. 또 가야사 연구·복원을 위한 전담반을 만들고 봉수대, 산성, 제철 유적 등 복원 대상 가야 유적 674곳을 정했으며 이 중 271곳을 전략사업으로 선정해 향후 8538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전북도가 도내 가야사 유적들의 발굴조사와 복원, 정비 등을 착수하기 위해 내년 국가예산 83억4000만원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해당예산을 한 푼도 반영하지 않았다.
  반면 그동안 가야 문화권으로 알려진 경남 등 타시도의 경우 대표적인 가야사 유적의 복원과 정비, 발굴조사를 완료한 상태며 더 나아가 관광사업과 사업을 연계할 구상도 추진 중이다고 한다.
  전북지역 백제, 가야에 관한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아쉬운 현재다.
  유물과 유적 조사 외에 전북의 지정학적 위치의 중요성을 짚어보는 주류성(13회), 백강전투 상하(15회, 16회)는 새만금을 통한 해양진출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주요 진격로였던 기벌포나 676년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이룬 기벌포 전투가 모두 금강하구로 밝혀졌다. 663년 백제부흥군의 수도였던 부안 주류성을 둘러싸고 당나라와 신라, 백제부흥군과 일본이 참가한 전쟁은 중국과 일본이 최초로 벌인 전투였으며 국제전이었다. 이 전쟁이 벌어진 백강은 현재 동진강으로 비정되어 오고 있다.
  이같이 금강과 동진강에서 벌어진 모두 3차례의 국제적인 전투가 전북의 서해안, 즉 현재 새만금지역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박영철 군산대교수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은 중국과 한반도간의 최초의 전면전으로서 대륙성 국가와 해양성국가간의 전쟁으로 신라는 한반도 최초의 통일된 해양성 국가의 실현이다”고 주장하면서 “조선왕조에 와서 대륙편향적인 역사가 지속됨으로 인해 소홀시 된 금강하구의 역사는 해양사의 연구가 강조되는 오늘날 시점에서 재조명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후백제의 수도였던 전주와 동고산성을 통해 백제와 후백제의 정신이 왜 전주로 모아졌는지 알아봤다.
  특별취재팀이 20회의 기획연재를 통해 확인한 것은 전북은 백제의 변방이 아닌 중심이었다는 사실이다. 전북은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움트고, 성장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이 곳에서 마한이 시작되고 백제의 문화가 꽃피우고 후백제의 기운이 서렸다.
  전북의, 전북인의 자긍심이 부끄럽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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